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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장 배금룡 - 우주를 품은 작은거인

성남시 남한산성 입구에 위치한 성남민속공예전시관. 장인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이처럼 장인의 혼을 느낄 수 있는 그 안에서 우리는 배금룡을 만날 수 있다. 소탈한 웃음에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한 모습과 작지만 큰 꿈을 가진 나전장 배금룡.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자세가 바르지 않고 인간답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장인이 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가장 인간다운 것이 장인이라는 말에 묻어나는 장인 정신이야말로 오늘의 그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장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화려한 오늘보다는 인내하고 노력한 어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배고픔과 추위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힘든 시기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학업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웠지만 사회는 냉혹했어요. 그러다 외숙의 소개로 전통공예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나전칠기를 통해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젊은 시절 그의 꿈은 가수였지만 나전칠기의 매력에 빠져 줄곧 작은 조개껍질을 잡고 있다. 전복껍질,진주패 등 빛나는 보석과 같은 형체를 발하고 있는 나전칠기. 그는 거기에서 나전칠기의 매력을 느낀다.
그 뒤 전통기술을 차례차례 전수 받아 나전칠기장 보유자 자리에 앉게 된다. 그의 작품에는 어떤 문양을 그리든지 그만의 특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원모양의 도안을 고집하는 그. 원은 바로 배금룡 자신을 나타낸다.


“나전칠기를 통해 제 자신을 원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아마도 원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한국적인 이미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1999년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에 이르기까지 90여 차례 수상, 40년을 나전칠기만을 연구하며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배금룡. 전승공예대전을 처음 입상하던 날, 어려운 시기를 딛고 그의 삶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나전칠기는 스물 다섯 가지의 공정이 끝나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1, 2년이 넘는 제작기간은 때론 그를 힘들게 했지만 묵묵히 인내하고 노력한 결과가 있었기에 오늘의 그가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나전칠기 제작 공정에 앞서 백골짜기를 한다. 보통 이 단계는 나전칠기장이 하지 않지만 그는 백골짜기도 하는 유일한 나전칠기보유자이다. 디자인 개발은 물론, 백골을 직접 제작하면서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기술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백골 다듬기, 자개 붙이기, 뿔빼기 등 그는 모든 공정 하나 하나에 몰입한다. 물건을 만드는 일 이상의 인간적인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기에 더욱 그의 작품은 빛을 발한다.


“기술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백골을 다듬고, 생칠을 하고, 자개 붙이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보다 기술이 뛰어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그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는가에 따라 그 작품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장인은 인간다운 모습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의 손을 거쳐 간 작품들이 우리에게 빛을 발하는 것은 나전칠기의 아름다움 못지 않게 그가 지닌 장인 정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작은 거인 배금룡. 소탈한 웃음 뒤에는 치열한 장인정신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