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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명장 김완배 - "그들의 웃음을 다시 만들다"

1950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국립민속박물관을 비롯하여 캐나다, 벨기에, 일본, 중남미 등 세계 각국에서 작품을 전시했으며, 현재 한국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이사로 안동에서 하회탈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신명나는 세마치 장단에 광대들이 흥겨운 춤판을 벌이고, 중간중간 야유가 섞인 사설이 터져 나온다. 둘러앉은 구경꾼들은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고 힘껏 박수를 치기도 한다. 서민들의 애환을 풀어내던 탈춤, 춤사위와 탈의 표정… 그 어디쯤엔가 한국인 원형이 숨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깊게 패인 주름, 삐뚤어진 턱, 얼굴에 가득한 웃음. 양쪽으로 틀어 올린 긴 머리…. 하회탈의 조형성을 떠올리다 보면 탈 깎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온 김완배를 만나게 된다. 그의 하회탈은 한국인의 희로애락의 표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나무, 색깔, 표정… 탈에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탈은 그저 세월의 손때가 묻은 우리의 정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5년 동안 한결같이 하회탈을 만들어 온 그는, 정신이 기능을 다스릴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탈이 생명력을 지니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한다.
그에게는 이렇다 할 스승이 없다. 끝까지 몰두하는 장인기질, 칼끝에 힘을 조절할 줄 아는 예리한 눈, 한국인에 대한 깊은 사색과 관심, 이것이 탈의 명인 김완배를 있게 한 힘이다.
그의 삶은 ‘나무’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가 ‘나무와 생명’이라는 화두를 갖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 덕수궁에서 있었던 어느 전시회에서였다.
당시 그는 남의 가구점에서 일을 하며 힘든 10대를 보내고 있었다. 객지에서의 고단한 삶에 지친 청년의 눈을 크게 뜨게 한 것은 진열대에 놓인 작은 장식용 함이었다. 은은하면서도 깊이 있는 색깔 처리, 정교한 장식, 투박하면서도 정숙함을 지닌 그 함은 죽은 나무가 아니었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다. 그가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길로 몸담고 있던 가구점을 뛰쳐나와 부산 목공예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대학에 갈 형편은 못되니 학원에서라도 공예기술을 배우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모든 면에서 남보다 빠르고 재주가 뛰어났다. 그곳에서 공예기술을 익힌 그가 다시 안동 고향땅을 찾은 것은 20대 청년이 되어서였다. 거기서 하회탈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전통에 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하던 때라 안동의 젊은 청년 몇몇이 ‘하회가면 연구회’를 조직하고 사라져가는 하회별신굿의 복원을 위하여는 춤사위의 재현도 중요하지만, 탈을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깨달았다.
하회별신굿은 이미 일제 초기에 중단되어 맥이 끊긴 상태였지만, 그래도 다행히 탈은 남아 1963년 하회와 병산탈 12종 13개가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는 주지,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치매, 부네, 백정, 할미 등 박물관에 갇혀 있는 그 모습들을 세상 속으로 다시 끌어내야 할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다. 실물을 보기 위하여 서울을 몇 번씩 오르내렸다. 그의 손끝에서 하나 둘 전통 속 인물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1978년 1월, 안동문화회관에서 하회별신굿 복원공연을 가졌다. 그 해 전국민속놀이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하고, 1980년에는 무형문화재가 지정되었다. 여기에 용기를 얻은 그는 전수자를 거쳐 1986년 드디어 이수자가 되었다.


“탈은 칼 기능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탈춤의 인물이 되어보지 않고는 그 표정을 나타내기 어렵습니다.”

하회별신굿의 구성원으로 춤을 춰봐야 그 인물이 갖는 표정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선비, 양반, 백정, 중 등은 턱이 분리되어 움직임에 따라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여 표정의 변화를 나타낸다. 또 보는 각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기도 한다. 탈의 단조로움과 고정성을 극복하기 위한 그의 창의적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옛날에는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모습을 형용하여 ‘이매스럽다’라고 했습니다. 이매탈의 눈은 아래로 처지고 코는 넓적 펑퍼짐하고, 코밑이 째진 언청이에, 좌우 근육은 비정상적으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게다가 턱이 없어 더 우스꽝스럽습니다. 춤사위는 흥에 겨워 급히 움직이려다 비틀비틀 쓰러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방정맞게 까불거리며 경망스러운 초랭이, 수줍은 듯 내리깐 눈을 가진 새색시, 유들유들하고 능청스런 늙은 중… 바로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사람들이다. 탈을 제작하는 데 있어 그가 신조로 삼는 것은 ‘옛 방식대로’ . 칼끝을 빌려 조각은 하지만 바탕이 제대로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칼을 갈 때는 여전히 숫돌에 간다. 나무에 따라 칼 가는 방법도 다르게 한다. 망치는 세로마치를 쓴다. 오리나무를 베어 말리는 일, 조각하는 일, 한지를 바르는 일, 색깔을 내는 일 등 과정 하나하나가 오로지 ‘정성’으로 일관되어야 함을 그는 안다.


그의 꿈은 소박하다. 하회탈과 똑같은 탈을 하나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창의적인 탈을 만들어 보라고 하지만 똑같이 만드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그는 믿고 있다. 똑같이 만드는 일, 그것은 바로 탈의 정신과 완벽하게 다시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