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화각장 한춘섭 - "소뿔에 영원을 그리는 사람"

활짝 핀 모란, 화려한 날개를 펴고 있는 공작, 초원을 한가롭게 걷고 있는 사슴, 우리네 일상의 기원들이 화려한 원색으로 펼쳐진다. 화각공예는 그런 것이다. 작은 공간에 그들의 삶의 이상을 표현하려 했던 장인들의 손길을 만나, 쇠뿔은 나비가 되기도 하고, 모란이 되기도 하여 오늘의 우리를 맞고 있다. 화각장 한순섭의 공방은 재생의 공간이다.
화각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명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예로부터 전승되어 온 우리나라 고유의 공예품 중의 하나이다. 재료가 귀할 뿐 아니라 내구성이 약해 보존하기 까다로운 점도 있다. 이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화각공예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은 작품 어디선가 살아 숨쉬고 있는 장인의 혼이 있기 때문이다. 화각은 재료를 구하는 것에서부터 손이 많은 가는 작업이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쇠뿔을 구하는 일부터가 만만치 않다. 오로지 한우 수소의 뿔만이 화각의 재료로 사용된다.
현재 화각을 하는 장인은 많지 않다. 성남시 태평동에 위치한 작은 공방. 화각공예에 평생을 바쳐온 장인 한춘섭(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29호)의 생활 터전이자, 이상이 현실로 살아나는 창조의 공간이다. 화각공예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한춘섭은 17살 때부터 기술을 배우게 됐다.


“누구든 그렇듯 17살이면 한창 꿈이 많을 때이지요.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포기한 채 일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장래에 대한 고민하고 방황도 많이 했지요. 우연히 형의 도움으로 화각공예를 하는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 화각공예를 접한 순간 왠지 모를 매력이 그를 빠져들게 했다. 강렬한 색감, 문양에서 나타나는 한국적인 이미지, 장식과의 정교한 조화. 그것들이 한층 그를 유혹했다. 그를 망설임 없이 이 일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큰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장래도 보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오직 화각에 대한 매력이 그를 붙잡아 두었다.
이 일을 배운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선생의 가르침은 혹독했다. 한 치의 잘못도 용납하지 않은 철저한 분이었다. 그 분은 장인의 길을 이끈 정신적인 스승이었다.
구하기 힘든 쇠뿔을 가지고 몇 날 며칠을 지새우며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화각에 대한 일념 하나뿐이다. 그후 줄곧 화각공예 하나만을 외길로 고집하고 있던 그는 전승공예대전에서 입상하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입상하던 날, 그는 작품을 어루만지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세 차례 전승공예대전에서 수상하며, 전시회 개최 등 폭넓은 작품 활동을 통해 화각장 분야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그는 화각과 함께 살아온 장인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화각공예는 주로 귀족층의 기호품이나 애장품으로 쓰여 왔습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화각공예의 아름다움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누구든 화각공예의 아름다움을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단체나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홍보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화각공예는 일부 특수층을 위해 제작되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 그 종류는 반짇고리, 경대 등의 침선용에서부터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구의 장식용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크게 화각공예는 세 가지 공정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백골을 만드는 것을 소목장일, 쇠뿔을 얇게 펴서 말리는 것을 각질장일, 각질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화공일이라고 한다. 화각은 이 세 가지 공정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제작공정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쉬운 것은 없다. 또한 공정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작품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작업을 해 오면서 그동안의 작품들 중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화각함을 재현하여 복원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형태가 어렵고 만드는 과정에서 그것을 재현하기에는 많은 부분 어려움이 있었지만 완성 후 그 작품을 통해 많은 보람과 자부심을 갖는다고 한다.


“일 할 힘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할 생각입니다. 다행히 큰아들이 이 분야에 재능이 있어 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각이 생활 공예로 자리잡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더욱 연구정신이 필요합니다.”

장인의 손길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꿈과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누군가가 말했다. 장인은 기술이 아닌 정신으로 영원을 산다고. 인간적인 아름다움이야 말로 장인정신의 정점이라는 것을 한춘섭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화각의 밝은 미래, 우리의 전통 계승은 약속될 수 있음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