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장 이형만 - "정직함이 생명이다"

나전칠기란 조개껍질을 가공하여 칠기 제작 공정에 따라 만들어진 기물에 여러 가지 무늬의 자개를 붙인 후, 그 위에 옻칠을 해 완성시킨 공예품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나전칠기 무형문화재가 두 사람 있는데, 각각 끊음질과 주름질로 그 기법이 다르다. 주름질 분야의 무형문화재 이형만(55세) 선생을 찾아, 그가 걸어온 진짜의 길을 되짚어 본다.
이형만 선생이 나전칠기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별로 드라마틱하지 않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친구들과 장난치다 팔을 다쳤고, 그래서 중학교 입학시험을 볼 수 없게 된 그에게 도에서 운영하던 기술원 양성소에 들어가면 중학교 공부도 시켜주고 기술도 가르쳐 준다는 소식이 들려 온 것이다.


그곳은 이른바 공예학교였는데 석고와 데생 등 기본 그림공부를 가르쳐 주었으며, 그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인지 나름대로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그저 중학 과정 공부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으로 시작했던 나전칠기가 평생의 길이 된 데에는 그곳 부소장으로 계시던 김봉용 선생의 영향이 컸다. 무형문화재 10호로 계시던 선생은 그가 3년 과정을 마칠 무렵 그를 데리고 나가 개인 공방을 차렸다.
졸업과 동시에 개인 사사를 받게 되어서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줄곧 함께 생활한 것이 어언 40여 년. 그동안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 요즘 같으면 배우고 싶은 학생들에게 작업하는 것을 직접 가르쳐 주지만, 그 당시엔 잔심부름을 1년 정도 해야지만 실톱을 쥐어 줄 정도였다.


김봉용 선생이 작품 활동 때문에 4, 5일간 공방을 비웠을 때의 일이다. 선생은 그에게 상을 주면서 일부분만 그르쳐주곤 딱 그만큼만 하라고 했다. 하지만 욕심이 발동한 그는 한꺼번에 3, 4점 다 칠 해 건조장에 넣었다. 옻칠은 습기가 있어야 건조가 되고 칠이 두꺼우면 주름이져서 못쓰게 되는데 미숙했던 그가 성급히 만든 것은 그만 모두 주름이져 있었다.
그는 어린 마음에 겁도 나고 해서 나전칠기를 안 한다고 보따리 싸들고 고향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리고는 한 4, 5일 신나게 친구들과 놀러 다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선생께서 큰 방에 떡하니 앉아 기다리고 계신 것이었다. 그렇게 도망가고 붙잡히고를 서너 번 했다.


자개를 오리거나 칠을 하는 것은 일정기간동안 어느 정도 연마를 하면 터득할 수 있지만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은 디자인이다. 전통공예라는 것을 일반인들은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 옛것을 계속 답습만 하다 보면 결국 사양길로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통공예 기법과 문양을 개발하여 현대와 접목시키는 작업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옛날 물건만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감각에 맞는 문양도 중요하지요. 자개농이 최고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생활권이 아파트이다 보니 대작이 필요 없어졌고 오히려 소품 수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옛것을 모방하거나 간이제작으로 경쟁력을 회복하려 한다면 전통 나전칠기는 올바르게 계승되지 못하겠지요. 그러므로 전통 공예 재료와 기술을 사용하여 현대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인 전통나전 칠공예를 개발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그는 3년째 배재대학의 옻칠 조형 디자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과 같은 생활을 하다보니 혼자 작업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배우기도 한다. 막 이십대에 접어든 어린 제자들의 디자인은 기발하기가 이를 데 없다고.
개인적으로 사사받고 싶어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장소가 협소해 못 받고 있던 것을 학교에서 대신 해결해주고 있는 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나전칠기는 안하겠다던 큰아들이 군대 제대 후 그의 일을 이어받아 현재 배재대학교에 대학원 과정에 다니고 있다.


“이 작업만큼 정직하고 성실해야 하는 작업도 없습니다. 정직이 철칙이지요. 작품 활동 하면서 돈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속인다든지 하면 절대 안됩니다. 결국은 다 드러나거든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인내심입니다. 나전칠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 까닭이지요. 기술 좀 배웠다 싶으면 보따리 싸가지고 나가 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억지로 붙잡을 수야 없지만 그런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요. 아무래도 예술적인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은 좀 빠르겠지만요.”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계속하겠냐는 질문에 “글쎄요”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이형만 선생이 귀띔하는 좋은 나전칠기 고르는 법

  1. 첫째, 제일 중요한 것은 전체 형태. 굽거나 돌아가지는 않았는지 세심하게 관찰하라.

  2. 둘째, 시각적 조형. 문양 디자인과 형태의 조화를 꼼꼼히 살펴라.

  3. 셋째, 자개 세공이 섬세하게 되었는지 확인하라.

  4. 넷째, 좋은 재료를 썼는지 아닌지 자개 빛깔을 유심히 살펴라.

  5. 다섯째, 옻칠은 가격 자체가 비싼 까닭에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나전칠기의 80%는 합성칠인 ‘카슈’이기 십상. 카슈는 냄새가 구리고 독하므로 구별할 것.